2007년 4월 19일 목요일

NBC, You've Made A Great Mistake!

NBC는 실수했다. 실수라도 아주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으로 학살자 조승희가 보낸 테이프를 공개한 것인가? 정말 어이가 없다. 말문이 막힌다.

당초에 듣기로는 NBC가 조승희로부터 한 꾸러미의 테이프를 받기는 했으되 그 자료들을 곧바로 FBI에 넘겼으며 (handed them over to FBI) “방송하지는 않을 것이라” (NBC have decided not to air them)는 것이었다. 나는 그리고 많은 우리들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4월 19일 (한국시간) 한국의 방송미디어는 “NBC가 방영한 것”이라면서 일제히 “조승희 테이프”를 방영한 것이다. 맨 머리에 빵 모자를 눌러쓰고 전투용 조끼를 걸치고 카메라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에 찬 “살아있는 인간의 목소리로” 그의 잔인무도의 무차별 다중 학살을 변명.옹호.정당화.미화. (make excuse, defend, justify and beautify his brutal mass murder)하는 그의 입장을 고스란히 내보낸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살인마 조승희가 "순교자“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It was the very moment that the killer Cho had made a metamorphosis from a mad killer to a martyr) 그가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과 육성으로 예수를 들먹이고 모세를 거론하는 순간 나의 뇌리는 그의 메시지로 난타를 당한 것이었다.


스틸 사진과 동영상은 다르다. 그것을 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정서가 천양지차다. 굵은 테 안경을 끼고 공허한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지금까지의 그의 사진은 다른 동료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외톨이 생활을 해 온 자 다운,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수용시설에도 수용된 적이 있다는, 딱 “범죄인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말끔하게 면도한 맨 얼굴에 더러 웃음끼도 띄면서 “말을 하고 있지” 않나. “지옥같은 어둠속에 영원히 갇혀있었어야 할 인간”이 말이다. (He was talking as a living human being to hundreds of millions of the global people. That is the problem. He should have been kept in the eternal hellish darkness.)

다시 “NBC의 실수”로 되돌아가서 (Coming back again to the problem of NBC's mistake) 이 미디어는 한 정신병자에게 무참하게 학살된 무고한 32명의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교수. 직원. 학생들과 슬픔에 젖어있는 유가족들과 동료 학생들에게 “테러를 가한” (It's as if the media had inflicted terrors on the faculty, staffs, surviving families and their relatives, colleague students of the 32 mass murder victims and many wounded students) 것이다. 왜 초강대국의 대 미디어가 범죄자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나? 우리가 자주 보는 미국 영화들에서 억울하게 몰린 범죄혐의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방송 미디어에 전달함으로써 국면을 뒤집어 혐의를 벗는 장면을 보지만 (We watch American movies very often in which innocent suspects turn the tables by transmitting the real pictures to the media and by their subsequent relaying of the truth to the naked eyes and ears of the audiences) 조승희의 경우는 전혀 다른 것이다. (Cho's case is utterly different!)

살인자 조승희는 그의 부모가 선택하고 자신도 동의한 이민국에서, 그것도 “자본주의의 본산”에서 초강대국의 시민과 영주권자로서 강대국 주권의 혜택을 입고 살아왔으면서, 그는 자본주의를 공격하고 제도에 도전한 것이다. 그것도 법질서를 준수하면서 절차에 따라서 한 것이 아니라 다량 인명 살상이라는 악랄한 방법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이다. 물론, 조는 학교와 지역사회로부터 그의 용모와 의상과 언행에 대해서 숙덕거림과 손가락질과 공공연한 조롱을 받았을 수도 있다. 다소간에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우리들 재미교포들은 생업을 일구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살아오고 있다. 시련과 수모는 인내와 지혜와 노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 폭력과 더구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이런 무참한 살상으로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Tribulations, insults and ridicules, if any, should have been overcome by endurance, wisdom and endeavors, not by violences and mass killings toward unspecified crowd.)

조승희의 메시지가 주는 효과가 있다. 이 시대는 이미지 시대다. (This is the era of images) 조승희 이미지라고 할까 “NBC 효과” (the NBC effect)라는 게 생겨날 것이다. 이제 “제2. 제3의 조승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The second and third Chos might appear) 인생의 실패와 좌절을 다중 살상 등의 방법으로 표출하면서 예수를 빙자하고 모세의 이름을 빌려 헛소리를 찍찍 뱉어내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에 대한 방어 체제를 가져야 한다. 우선 방송이 센세이셔널리즘 (일반 대중에게 무사고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방송 미디어도 우리 시대 사회, 그가 속한 국가, 글로벌 세상의 일원이라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The media should arm themselves with the sense of responsibility that they are also members of the society they belong to, the sovereign state they should serve, and the global entities they live with.)

우선의 방어체계는 무엇인가? (What will be one viable defense mechanisms, to begin with?) 그것은 다중 살상이나 살인 등의 방법으로 사회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미디어도 대응의식, 더 직접적으로는 “복수심”을 거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복수”란 다름 아니라 이들 미친 범죄자들의 헛소리를 이 세상에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One of the viable defense mechanism is for the media to harbor the idea of revenge, which is not relay the messages of the would-be flagrant criminals) 이 미친 자들이 그 무슨 헛소리를 세상을 향하여 지껄여대도 절대로 세상에 그대로 공공연히 요란하게 알려지는 일은 없으며 그들의 헛소리는 영원이 “지옥의 어둠 속에 묻혀지고 만다”는 걸 안다면 이제 그들은 생각을 달리할 것이다. (The nutty criminals will have second thoughts if they knew that their craps would not be relayed to the outside audiences publicly and vociferously, only to be trapped in the labyrinthine darkness of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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